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리로 만나는 계절 단어

by diary76408 2025. 8. 29.

소리로 만나는 계절 단어
소리로 만나는 계절 단어

 

사람은 시각으로 계절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꽃이 피고 지는 모습, 단풍이 물드는 풍경,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거리.

하지만 자세히 귀 기울이면 계절은 소리로도 자신을 증명합니다.

매미의 울음소리, 낙엽이 바스락이는 발자국, 하얀 눈 위를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 그리고 연말을 알리는 종소리까지.

이러한 소리들은 단순한 청각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계절을 살아내며 쌓아온 감정과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언어입니다.

 

 

 

 ## 1. 여름의 합창, 매미 소리

여름을 대표하는 소리로는 단연 매미 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햇볕이 쏟아지는 정오 무렵, 사방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은 여름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려줍니다.

"매미 소리가 귀를 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울음은 때로는 시끄럽고 번거롭지만,

동시에 여름 특유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매미 소리는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을 배경으로 떠오릅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공을 차거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땀을 식히던 순간

언제나 매미 소리는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매미"라는 단어는 소리와 함께 어린 시절의 여름 방학, 자유, 그리고 시간을 잊은 놀이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매미 소리를 들으면 여름의 무게가 실감납니다.

그 소리는 단순한 곤충의 울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뜨겁다"는 여름의 선언입니다.

여름을 설명할 때 "뜨겁다"는 시각적·체감적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매미 소리라는 청각적 단어가 더해져야 비로소 여름의 실체가 완성되는 것이죠.

 

 

 

## 2. 가을의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가을은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귀로 들어도 그 계절만의 고유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낙엽 밟는 소리입니다.

 

낙엽이 쌓인 길을 걸을 때 발밑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바사삭 소리는 단순한 잡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을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동시에, 그 계절의 쓸쓸함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하는 청각적 언어입니다.

이 소리는 계절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묘한 감정을 줍니다.

 

어릴 적에는 단순히 재미 삼아 낙엽 더미를 일부러 밟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소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스락거림 속에 담긴 고요, 그리고 그 고요가 품은 여백 같은 것 말이지요.

그래서 낙엽 밟는 소리는 쓸쓸함과 여유, 그리고 사색을 불러오는 가을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가을을 ‘바람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만든 낙엽과, 그 낙엽이 만들어내는 소리야말로 가을의 진짜 정서를 담아내는 소리입니다.

낙엽을 밟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3. 겨울의 고요와 울림, 눈과 종소리

겨울에는 독특한 두 가지 소리가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하나는 눈 밟는 소리, 또 다른 하나는 종소리입니다.

 

눈 밟는 소리

하얗게 쌓인 눈을 밟을 때 들려오는 ‘뽀드득’ 혹은 ‘바스락’ 하는 소리는 겨울의 전매특허라 할 만합니다.

다른 계절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이지요.

눈밭을 걸을 때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소리 또한 그 순간을 새기며 지나갑니다.

겨울의 공기는 유난히 고요한데, 그 정적 속에서 눈 밟는 소리는 작은 음악처럼 들립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며 뛰어다니던 기억,

혹은 첫눈이 내린 날 혼자 걸으며 느낀 설렘이 이 소리에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종소리

또 다른 겨울의 소리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나 연말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울림입니다.

특히 12월 31일 자정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한 해의 끝과 새로운 해의 시작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을 뜨겁게 데워주는 듯합니다.

이 소리는 단순한 금속의 울림을 넘어, 시간과 희망, 그리고 다짐을 의미합니다.

 

겨울의 소리들은 대체로 고요하거나 울림이 깊습니다.

여름의 매미 소리가 생동감과 열기를 품고 있다면, 겨울의 소리들은 정적과 성찰, 그리고 따뜻한 기도를 불러옵니다.

 

 

 

# 마치며: 소리로 기록하는 계절의 언어

 

우리는 흔히 계절을 시각으로만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계절은 귀로 더 선명히 남습니다.

매미 소리가 없다면 여름은 덜 뜨겁게 기억될 것이고,

낙엽 밟는 소리가 없다면 가을은 덜 쓸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눈 밟는 소리와 종소리가 없다면 겨울은 덜 고요하고 덜 따뜻했을지도 모릅니다.

 

계절의 소리들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삶의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이 소리들을 단어로 남기는 것은 곧 우리의 시간을 기록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소리로 만나는 계절 단어들은 귀를 넘어 마음에 닿아, 우리가 살아온 순간들을 더욱 풍요롭게 해줍니다.